네가 어머니 뱃속에서 성별을 알린 순간부터, 세상은 널 위해 작동하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나 세계의 주변부에서 머무르다, 소모되고 사라질 것이다.
'아기가 딸이에요? 어머 그래요. 요즘은 딸이 최고죠.'란 축하로 어머니 아버지의 정서적인 만족, 각종 집안일의 책임자, 다른 형제들에 대한 돌봄, 노후에 일어나는 궂은일들을 도맡을 것을 임명받았다. 태어나지 않은 너에겐 이미 여성스럽다 일컬어지는 색깔의 옷들과, 소꿉놀이나 인형이 준비되어 있다. 크게 입 벌리고 하는 하품, 어린이다운 장난, 더러워진 옷, 망가진 학용품, 삐뚤삐뚤한 글씨는 너의 몫이 아니다. 너의 오빠나 남동생이 나이가 어린 사람少年이라 불릴 때, 너는 어린 여자小女라 불린다.
어린 사람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세계와 어울리길 독려받는 동안 너는 안으로 파고들게끔 교육받는다. 내면의 성찰이 아니다. 세계와 접점 없이, 혹은 정해진 국경선에서만 노닐도록 설계된 구조. 네가 어느 곳의 소속, 닫혀있는 공간, 정적인 동작,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있지 않으면 너의 어머니 아버지는 몹시 불안해한다. 네가 세계로부터 내쳐질까 봐. 그러므로 자라나는 너를 위한 수십 벌의 속바지, 수만 개의 생리대, 너의 몸을 옥죄는 브래지어와 보정 속옷. 너의 몸은 허락된 부위만 드러나야 한다. 너의 털들은 남의눈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 땀이나 피지, 냉이나 피를 포함한 너의 분비물들은 언제나 비밀스럽게 처리되어야 한다. 조심성 없이 드러내거나, 대놓고 정확한 명칭을 언급함으로써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처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 모욕과 수치. 너를 위한 판단 기준들은 언제나 새롭게 정비되어 왔다.
네가 부딪치고 만날 세계는 세계의 아주 작은 조각이다. 진짜를 만날 기회, 진짜와 부딪치고 어울릴 기회는 흔치 않기에, 너는 진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세계의 목표는 하나다. 너를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낭비 없이 잘 사용하는 것. 그것을 위해 애정 어린 목소리와 매서운 훈육이 동시에 준비되어 있다. 혹여 아직 순진하고 어린 네가 이 이상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네 입을 틀어막을 손도 얼마든지 있다. 세계는 허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네가 네 생각을 말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다. '어디 여자애가 꼬박꼬박 말대꾸야.'로 시작해'그런 여자는 피곤해.'를 지나면서도 네가 빳빳이 든 고개를 내리지 않고,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있다면, 그것은 ‘이런 쌰ㅇ년이’란 말을 들어도 좋다는 신호이며, 기꺼이 두들겨 맞아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맞아도 싸다' 혹은 '죽어도 싸다’란 말로 끝난다. 그래서 세계는 네가 고분고분한 여자가 되길 원한다.
‘이왕이면’이란 수사 뒤엔 얼마나 많은 욕망들이 붙을 수 있는지. 너는 아직 모른다. 네가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목표와 꿈을 지니고 있든, 일단은 조용히 앉아 얌전히 입을 가려야 한다. 그래야 누구라도 너를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개운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기에. 어쩌면 너는 세계의 절벽 끝에 내몰린 가장 처절한 남자의 손에 끌려갈 수도 있다. 너의 손을 잡은 남자는 그제야 분노의 방향을 조정한다. 너는 육중한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수천 년 동안 어머니들이 해 온 모든 의무들이 너의 앞에 놓여 있다. 세계는 가끔 말한다. 이것이 참으로 여자다운 일생이라고. 너라는 조각이 들어가야 할 칸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으면, 모두가 불편하다. 지금껏 모두가 동의해 온 편한 방식에 균열이 간다. 너는 오로지 수단. 거대한 엔진을 위한 부품이다. 따라서 네가 항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온전히 보존된다. 그러므로 네가 거부하는 동시에 너의 입을 막으려 모두가 달려든다. 그들은 너의 입을 막고, 또 찢고 싶어 한다. ‘그냥 확 자빠뜨리면 끝이야.’ ‘임신했는데 지가 별 수 있나.’ ‘여자는 나이가 생명이지.’ ‘아기 예뻐하는 것 보니 결혼할 때 다 됐어.’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시집가더라.’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지.’ ‘제때제때 남들 하는 것 하는 게 효도야.’ 너를 위해 모두가 협력하여 파놓은 함정에 네가 들어가길 머뭇거리고 있으니 지켜보는 모두의 속이 탄다.
네가 너의 이름으로 홀로 서는 것은 금기시된다. 너는 불안한 마음에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이름들을 찾아보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역사가 지워버렸다. 가끔 걸리는 이름들에겐 언제나 이런 질문들이 던져져 왔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홀한 육아에 대해 후회하진 않으신가요? 남편 분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그리고 어쩌다 저지른 인간적인 실수 하나에 그녀들의 이름은 사라져 버린다. 나락에 떨어져 영영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너를 위해 준비된 모든 것들은, 아주 다정한 애정이 담긴 목소리에서, 네 목을 위협하는 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여자 팔자를 받아들여라, 반항하지 말고 순응해라, 적절한 때에 눈치 맞춰 희롱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라, 적당한 남자의 애를 낳고 육신과 영혼을 다해 키워라, 너의 이름을 잊어라, 언제나 그림자, 안개꽃, 보조자, 허물을 닦아줄 걸레, 오로지 수단으로써만 존재해라. 이것을 직시하는 것이 시작이다. 방향을 모르겠거든, 세계가 요구하는 것들의 반대로만 가면 성공이다. 모든 기준을 너에게 맞춰라. 네가 편안하고 네가 건강할 수 있는 방법들을 택하고, 네 기분과 선택을 최우선으로 쳐라. 네가 착하게 살면 모두가 안심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부해라. 개가 짖지 않으면 주인이 편하고, 아이가 울지 않으면 부모가 안심한다. 학생이 떠들지 않으면 선생님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생각해라.
도덕은 늘 약자에게 최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우리는 우리가 정하지 않은 법칙들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잊지 말자. 오직 너만 생각해라. 그것이 여자의 도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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