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흉자'라고 불리는 여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여자지만 성차별 당해본 적 없는데?", "요즘엔 남자들이 더 역차별 당해. 남자들도 힘들어~ 불쌍해." 레퍼토리가 남자들 헛소리 복붙 한 것 마냥 똑같다.
이런 '흉자'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남성 중심사회'에 세뇌당해서 여성 혐오가 여성 혐오인 줄도 모르거나,
- 성차별을 당해봤지만 남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티 내지 못하거나, (이 경우 흉자가 아닌 코르셋)
- 가부장제의 규칙을 따랐을 시 떨어지는 콩고물(대리 권력 등)이 있기 때문이거나,
그런데 나는 이런 이유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가축, 노예 취급을 당한다는 걸 인정하는 게 여자로서 '자존심' 상해서.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기혼 여성들이 "남자들(남편들)은 바깥일 하느라 힘들겠다. 집안일보다 회사일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정말로 자기 남편을 경력 단절돼서 집에 처박혀 사는 자기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여길 만큼 멍청해서겠는가? 아니다. 이는 '자기 방어 + 정신승리 + 합리화'일뿐이다.
남편을 '돈 버느라 힘들고 불쌍한 놈'으로 여겨야 자기가 육아와 가사노동을 맡는 '노예'가 아니라는 논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연결된 여성 혐오적 사고관이 디폴트인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남자들이 평생 일하는 게 불쌍한 게 아닌데 말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경력단절, 임금차별 등으로 앞날이 막혀버린 여자들이 더 불쌍한 건데, 이를 인정하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
생각해봐라. 어느 누가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일하는 남자들은 불쌍하다'는 식으로 치환시켜서 자신의 처지를 애써 위로하는 것이다. 기혼으로 예를 들었지만 미혼의 흉자도 다를 바 없다.
나 역시 저것과 비슷한 이유들로 여성차별을 꾸역꾸역 부정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저런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사회적으로 노예, 가축 취급받는 현실이 결코 기분 좋게 받아들일만한 것은 못되지 않은가. 임금차별, 유리천장, 경력단절, 온갖 여성 혐오 범죄는 물론이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 곳곳에도 여성 혐오가 묻어있다. 성매수, 트랜스젠더 문제, 결혼 제도 타파, 비혼, 비출산, 탈코르셋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여자가 2등 시민인 것을 넘어 이 땅의 마지막 노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를 하나하나 받아들이는 것은 차라리 부정하고 모른 척하는 게 나을 만큼 매우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라든지 심한 경우 '왜 여자들만 이렇게 차별받는 거지? 차별당할 만큼 못나고 열등해서?'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존심'마저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유독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반대로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저들은 차라리 눈감고 귀 막으며 '정신승리'를 택한 것이다. 아마 자신들도 속으로 어느 정도 동감할 것이다. 은연중에든 대놓고든 살면서 '여성 차별'을 단 한 번이라도 안 당해본 여성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본인들이 이 사회에서 가축 취급당하는 걸 아니까. 그러한 진실들을 포장 없이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여성들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정말로 페미니스트가 하는 말들이 터무니없고 이해가 전혀 안 갔더라면 "뭐야 말도 안 돼. 여자가 노예라니." 하면서 관심 안 두고 넘어갔을 것이다. 굳이 구구절절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노예가 아님을 부정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그래도 다행인 건 저런 부류의 여성들은 '남자 못 잃어'로 인한 정신승리는 아니기에 다른 부류의 흉자들보다 각성하기 쉬울 거라고 본다. 이미 공기처럼 만연한 여성 혐오를 부정하기만 하면 근본적인 문제는 고칠 수 없을뿐더러, 결국 그 여성 혐오들은 다 본인에게 화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자들은 결코 멸시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가부장제는 인류 역사 전체에서 보았을 때 코딱지만 한 시기일 뿐이라는 것, 앞으로 여성 우월 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난포와 난포 결합 출산 상용화로 결국 남자들은 멸종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함께 연대해서 그러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까지 전부 인지하여야 한다.
개중에는 끝까지 정신 못 차리는 흉자도 있겠지만, 뒤늦게라도 정신승리를 그만두고 현실을 받아들일 여성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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