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에는 어마어마한 대식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다양한 요리 방법, 다양한 재료 따위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쌀'만을 세숫대야만 한 밥그릇으로 꾸역꾸역 기본 5 끼니를 먹었다. 부잣집은 7끼를 먹었다.
그런데 조선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매년 봄만 되면 사람들이 굶어 죽고, 지난해에 자연재해라도 닥쳤다가는 마을 단위로 모두 죽어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미개하지 않은가? 다섯 끼 먹을 것을 세 끼로 줄이고 두 끼 씩이라도 아끼면 봄에 굶지 않고 환곡받아서 가을 철에 갚느라고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국 자료를 보면 이에 관해 습한 기후 때문이라느니 다양한 핑계?를 내놓고 있는데, 다 필요 없고 인간이 나중에 굶는다는 걸 알면서도 배가 터져라 먹는 경우는 딱 하나뿐이다. 바로 '지금 먹지 않으면 빼앗길 때'
조선시대에는 옆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근데 다른 사람들이 쌀 다 먹고 쫄쫄 굶을 때 누구네 창고에 쌀이 쌓여있다는 소문이 나면 어찌 되는 줄 아는가? 당장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 치면서 쳐들어가서 쌀을 마을 사람들과 나누지 않다니 탐욕스럽다, 인정머리 없다, 인색하다 하면서 폭력 시위가 시작된다.
그뿐이겠는가? 부패한 아전과 지방관들이 그 쌀을 지들 것으로 만들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조선시대 법에는 죄인의 기준이 '불효한 자' 따위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일단 불러서 곤장을 친 다음 반병신 만들어놓고 죄목은 그냥 갖다 붙이면 그만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조선 특유의 마인드 셋이 바로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누구 하나 잘 나가는 꼴을 못 보고 서로를 감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밥이 나올 구석이 있어 보이면 나눠먹자고 달려들어서 그 잉여를 싹 공중분해해버린다.
'부의 축적'이라는 게 도무지 이뤄질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니까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고하는 게 불가능하고 오직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는 생존본능으로 눈앞의 쌀을 먹어 치우는 데에만 열과 성을 바쳤던 것이다.
조선 여자들은 10살이면 팔려가듯 결혼해서 하루에도 시가 식구 10명 분의 밥을 5끼씩 짓느라 허리가 휘고, 그 와중에 빨래하기, 물 긷기, 바느질하기, 삼베 짜기, 남편한테 얻어맞기, 강간당하기, 애 낳기 따위에 평생 시달렸다.
그렇게 여자를 갈아대도 남자들이 다섯 끼씩 쩝쩝 먹느라 잉여 생산물 죄다 날려버리고 점점 더 가난해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밑반찬, 진미채나 메추리알 계란말이 같은 건 죄다 일본에서 넘어온 것이다. 불고기는 스키야끼의 짭이고 각종 찌개류도 일본의 나베를 보고 흉내 낸 것이다. 조선 제사상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식 국물 요리는 요즘 아무도 안 먹는 탕국 정도였다.
조선 시대의 미개함은 어디까지인가. 반드시 탈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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